2026. 1. 22 거룩한 남녀 관계, 진실한 언어 습관 (마 5: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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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4회 작성일 26-02-01 09:48

본문

본문은 살인에 이어 7계명 간음에 대한 적용이다.

살인이 인간 생명에 대한 가장 원초적 행위라면 간음은 인간관계의 가장 원초적 행위이다.

인간이 관계 맺은 첫 번째 관계가 부부(남녀)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주님은 성문제 관해 제자들의 엄격한 거룩성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성적 타락의 경우도 살인과 같이 행위보다 동기를 중시하신다.

간음의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이다.

욕망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욕망이 죄를 짓게 만든다.

성은 하나님이 오로지 부부의 관계 가운데 주신 축복이다.

성의 축복은 부부의 관계 안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욕망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예수님은 성적으로 죄를 지은 여인들을 대할 때 그 영혼과 인생을 중히 여기셨고 존중하셨다.

이것이 신본주의적 휴머니즘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성을 쾌락의 도구만이 아니라 종교적 자기 성취의 도구로 여겼다.

간음한 자에게 돌을 던짐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간음을 유발하는 육체의 행위를 제어하라고 명하신다.

범죄하게 하는 눈을 빼버리고 손을 잘라버리라는 것이다.

욕망의 행위를 철저히 통제하라는 의미이다.

눈을 빼버리는 것은 눈이 보아야 할 것 만을 보라는 의미이다.

성적 범죄는 간음을 유발하는 음란한 것들을 보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적극적 의미에서는 거룩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음란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다.

욕망을 제어함과 동시에 율법으로 욕망을 합리화하지 않아야 한다.

주님은 간음의 문제를 이혼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당시 이혼의 유일한 사유는 간음이었으며 특히 여성의 간음만을 이혼 사유로 다루었다.

당시의 종교인들은 율법을 교묘히 왜곡하고 적용해서 아내를 버리는 일에 사용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증서를 그 손에 주고’ (24:1)

주님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음욕을 품고 간음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율법으로 합리화려는 시도들에 

일침을 가셨다.

아내를 버리는 것, 억울하게 버림받은 여성을 마음대로 취하는 것 이 모든 행위가 남성 중심적 행위이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성을 위한 성적 순결을 먼저 지켜야 한다.

성적인 죄악이 만연한 사회 가운데, 특히 교회 공동체와 영적 리더들 안에서 발생하는 성적인 죄에 대해 통회하며 나와 성도 모두가 성적인 거룩을 지키며 

회복시켜나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27-32)

 

예수님은 맹세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의 의를 말씀하신다.

예수님 당시의 맹세는 주로 법정에서의 증언에서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에 의지하여 맹세하는 것은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따라서 잘못된 거짓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며 이웃에게도 화를 미치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신실한 맹세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이 맹세조차도 금하고 계신다.

당시 유대인들이 함부로 맹세하고 거짓 맹세를 일삼으며 교묘한 궤변으로 자신의 헛된 맹세에 대해 궤변을 늘어놓음으로 사람들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였기 때문이다.

맹세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겸손과 진실을 가르치시는 주님의 요구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진실함으로 이웃을 대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33-37)

 

주님!

성적인 거룩을 지키며 거짓된 맹세를 삼가함으로 성결하고 진실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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